"뭐라고 말 좀 해봐!" 잔뜩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유리창 너머로 건너다보며 나는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너, 변호사에게까지 묵비권을 행사해서 대체 어쩔 셈이야? 정말 네가 했어? 아니잖아. 그럴리가 없잖아. 왜 남의 죄를 덮어쓰려는 거야." 분기에 찬 목소리가 말한다. '그럴리가 없다'고, '남의 죄'를 왜 '덮어쓰려' 하느냐고. "다른 사람도 아...
어쩐지 온몸이 움츠러드는 그런 오후였다. 수험 생활의 끝자락에 발끝을 걸치고 있는 우리들에게 50분과 10분 간격으로 한번씩 울려대는 형식 뿐인 시종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함에도 그 껍데기뿐인 '쉬는시간'이라는 네 글자가 괜시리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건 어째서일까. 뒤집어쓰고 있던 낡은 모포가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것을 추스리고는 수학 공식들이 산만하게 ...
기나긴 여정이었다. 이제 완전히 멈추어 서 버린 열차에서 나는 가만히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 저것 포함해, 참, 길었다고. 멍하니 앉아 있는 저와는 달리 부산스레 움직이는 다른 승객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밝았고, 그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 없었다. 그것은 필시, 저희들을 기다리는 따스한 품을 향한 두근거림의 반증이었으리라. 간혹 조바심을 내는 이도 있었지...
가끔 나는 생각하곤 한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었을까. 부르릉 바퀴가 구르는 소리, 타다닥, 차창 밖을 두드리는 빗소리. 대체 어디쯤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만 하는지 온통 불투명하기만 한 그 공간에서 덜컹이다보면 어깨 쪽에 문득 느껴지는 그 무게는, 돌아보면 사라질 신기루였다. La Muse W. Micostella 그가 내 마음에 남긴 발자국은 이루...
무엇이든, '처음'이란 특별하다.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엄마"하고 말했을 때, 처음으로 혼자 일어났을 때, 처음으로 걸었을 때, 처음으로 이를 갈았을 때 등등. '처음'이란 축복의 대상이다. 그것이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누구든 '처음'의 미명 아래 이루어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허락받는다. "처음이니까."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이란 ...
"에, 니노도 왔어?" "의외네. 이런거 유치하다고 안 올줄 알았는데." "얼마만이야? 너 동창회도 잘 안나오잖아." "맞아맞아. -아아, 미안. 난 패스- 이런 말이나 하고 있고 말야." 그래서 환영한다는 건지, 얄밉다는 투정인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반 애들의 소란은 "뭐, 가끔은 괜찮을것 같아서."라는 말로 얼버무리고는, 꽤 묵직한 삽이 흙바닥 위에 ...
"전학생을 소개한다. 이름은, 니노미야 카즈야." "잘 부탁드립니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나 익숙해서 창가에 두었던 시선을 천천히 끌어와 교탁 앞에 서 있는 너의 흰 셔츠에 고정시켰다. 명찰에 선명한 이름을 확인하고서야 시선을 올렸을 무렵, 너의 동그란 뒷통수가 둘째줄 기타지로의 옆자리에 자리잡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이었다. 2년전, 네가 내 앞에...
Blue Night W. Micostella 화면 속의 너를 바라보았다. 미모의 여성과 정신없이 입술을 나누는 너를. 유난히도 도톰한 입술이, 그 아래위에 알알이 박힌 작은 점들이, 여자의 뺨을 쥐는 길다란 손가락들이, 하나같이 내것이 아닌 그것들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 손을 뻗어보아도- 닿는 것이라곤 차디찬 스크린뿐. 화면을 정지해 놓은채 감은 너의 ...
* 집요정 설정은 J.K.R.님의 H.P.로부터 빌려왔습니다 : ) * 막장 주의, 캐붕주의. 누가 주인이야? :P W. Micostella "야, 야아-" 아무래도 미쳤는가보다. 야근을 너무 해서가 아닐까?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마츠모토는 귓가에 느껴지는 날파리 같은 것을 쳐내려 손을 휘저었다. 날파리가 말을 할리가 없잖아! 자꾸만 들려오는 낯선 ...
変わらないもの W. Micostella 달칵,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가 아침에 문을 닫고 갔던가? 고개를 갸우뚱대며 들어서다 주륵 흘러내린 가방을 추스리지도 못한채 그대로 굳은 듯 멈춰섰다. 시선도, 발걸음도, 호흡마저.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작은 방을 가득 메운 이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요 꼬맹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거야. 잔뜩 웅크리고 있는 ...
"불고기 버거 두개랑 감자튀김 두개요. 케찹은 많이 주세요. 예예, 여기 534번지 2층- 바로 옆 건물 맞아요. 네, 계산은 쿠폰으로." 익숙한 목소리에 익숙한 주문내용. 저쯤 들으면 이제 목소리만 들어도 척 하고 "아, 거기요? 불고기 버거랑 감자튀김 두개씩이죠? 케찹은 많이." 라고 할법도 싶은데. 저 햄버거집 마스터는 아무래도 기억력이 무진 나쁜가보...
http://youtu.be/GPvjhZmB804 ♪ 선인장 (Acoustic Ver.) - 에피톤프로젝트 (Vo. 심규선) 짝사랑 W. Micostella "어디서 데려왔어?" 짙은 눈썹이 치켜떠진다. "아, 요 앞에 왜 새로 생긴 분식집 있잖아. 그 맞은편 코너에서." 왠지 모르게 조금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끼며, 아이바는 대답했다. 같이 지낸지 이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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